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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학예회 - 소설 부문 : 길]




하늘에서 내려온 그들의 영혼이 빗줄기를 타고 온 마을로 퍼져나간다. 영혼의 목소리는 모두의 마음속에서 한없이 아름답게 메아리쳤고, 문득 그들의 손길을 느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어느 무엇도 변한 것은 없다, 또한 그 무엇도 멈추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그러나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의 그리움을 담은 비의 계절이 시작하였다.

끼이익-

문의 마찰음이 들리며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문가를 지키고 있던 그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놀라며 그 곳을 쳐다보았다. 머리에 앉은 물방울들을 손으로 조심스레 털어내며 우산을 접는 한 여자가 그곳에 서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순간 멍 해져 있던 그는 ‘아’ 하며 그녀를 향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요즘 비가 많이 오죠? 많이 젖으셨네요.”

그녀는 그저 빙긋 웃으며 조용히 “네” 라고만 대답하고, 그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창문가에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 카운터로 가서 황급히 컵에 물을 받아 그녀에게로 갔다. 그가 오는 것도 모르는 지 그녀는 그저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기…”

그가 컵과 함께 말을 건네자 그녀는 그제서야 그를 발견하고는 컵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곧 그녀의 눈길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결국 카운터로 돌아왔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카페엔 비를 피하러 온 손님들 몇 명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비가 내릴 텐데 겨우 며칠 안 된 지금도 가게가 이렇게 한산해서야 장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방금 막 도착한 새로운 손님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표정 속에는 무언가 아련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그녀의 깊은 두눈에 담겨지는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기억을 떠올리는 것인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가방 속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타닥타닥, 바깥의 빗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한대 엉키어 울려 퍼졌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갔고, 며칠이 지나자 개어있는 시간보다 비가 내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며칠 째 계속 내리는 비인지조차 세기 귀찮을 정도로 장마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카페에선 예전의 북적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님 수가 줄었다.

예전과 달라진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오후에 카페가 제일 한산할 때가 되면 늘 그 모습 그대로 그녀가 창문가에 앉아 자신의 바로 앞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한없이 바라보다 예의 그 노트북을 꺼내어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곤 했다. 무슨 이유가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외로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왠지 모를 한숨을 내쉬곤 하였다. 알 수 없는 힘겨운 싸움을 하는듯한 그 모습이 안쓰러웠달 까.

그날은, 계속되던 하늘의 울음소리가 조금 사그라지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참방참방 물장난을 치는 듯이 장난스러운 빗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그는 김이 일렁이는 따뜻한 커피 잔을 손에 쥐고서 그 장난스런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렇게 자그마한 그들의 목소리가 그의 귓속에서 재잘거리며 맴돌았고, 그는 조금이나마 장마를 잊고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문득 말을 걸었다. 은은한 커피향이 묻어나오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어머니의 포근함을 닮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태양이 내리쬐더니 어느새 이렇게 장마가 시작했어요. 하늘 으로부터 내려온 빗방울들은 작은 물줄기가 되고, 모여서 강이 되어 바다를 향해 내딛겠지요. 그리고 그 바다에서 만난 작은 물방울들은 다시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될 테고 또 지금처럼 비가 되어 떨어지게 되요.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잊고 지내왔는데도 그렇게 세상을 돌면서, 장마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해요.”

그녀의 이야기는 이런 말로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그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비 내리는 날의 그 분위기와 함께, 그녀의 말을 조심스레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편안했고, 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작은 그리움의 조각 하나가 걸쳐져 있는 듯 그 미소는 슬퍼보였다.

그는 그녀를 따라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코끝에 작은 빗방울 하나가 톡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연이어 한 방울이 더 떨어져, 하나의 큰 빗방울이 되어 밑으로 떨어졌다. 1 더하기 1은 2가 되지만, 물방울 하나에서 하나를 더하면 둘이 아닌 더 큰 하나가 되었다. 당연한 이치였지만, 왠지 그 것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데도, 조금 있으면 다시 태양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낼 테고, 힘껏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그 약한 날개로 하늘을 나는 잠자리 떼도 나타 날거에요. 우리는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느라 잊고 있는데, 자연은 늘 그래왔듯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고, 그들의 이치대로 살아 숨쉬고 있어요. 이런 거, 왠지 멍해지지 않아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약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네, 그냥 모두 다 자연의 이치 그대로 살아 숨쉴 뿐인데 우리는 너무 바쁘게 움직이려고만 하는 것 같달 까… 그런 기분이 드네요. 왠지 슬픈걸요, 그런 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길 저 너머엔 왠지 그녀의 마음을 담아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미소엔 그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의 감정이 짙게 배여 나왔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며, 점차 가까워졌다. 그날을 계기로 그는 그녀와 함께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창문 속 배경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또한 많은 시간이 함께했다.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에 대해, 작은 하나하나의 추억에 대해, 그리고 꿈에 대해서도….

“꿈이 뭐예요? 대학생이라고 했으니,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꿈꿔왔던 것 있을 거 같은데” 그가 웃으며 물었다.

“꿈이라… 남에게 말하기는 조금 쑥스럽고, 또 아직 많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작은 소망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른 그 꿈에 대한 열정과 즐거운 듯한 마음으로 들떠있었다. 밝고 활기차게 꿈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웃음을 짓게 했다.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즐거워서, 생각을 상상을 한자 한자 적어나가는 것이 행복해 가지게 되었다는 그 ‘소설가’라는 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진정한 꿈을 꾸는 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행복이란 건,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니까.

또다시 비의 냄새가 짙어져가고, 하늘은 우울한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어간다. 어느 날, 그는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나 늘 걸려있던 미소 대신에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하는 눈빛과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어느 때처럼 창문을 바라보지도 않고 가만히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얹어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 무엇이든 괜찮으니까, 말해보라는 듯이 그렇게. 마침내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은 길이었어요. 순간적으로 불타는 마음에 나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을 달리고 또 달렸죠. 밝은 태양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는 것만 같았달 까…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내 앞에 펼쳐진 길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지금까지 지어왔던, 그 모든 쓸쓸한 슬픔의 조각은 그 어두운 길에 혼자 서 있었던 그녀의 힘겨운 마음 이었을까.. 혼자인 것이 힘들어, 어두워진 그 곳을 걷는 것이 무서워 멈춰버렸던 그녀는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그 길에서 도망쳐버렸다.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이젠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정말 내 길인지, 진심으로 가고 싶었던 그 길이 정말 나를 위한 길인지…”

“괜찮잖아요, 단지 그 꿈을 향한 열정이 있다면..”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표정만큼은 포근하게 미소 짓고 있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고 했잖아요, 꿈을 향한 그 진실한 마음이 있다면 그걸로 된 거잖아요. 그 길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걸요. 전혀 사라지지도, 끊기지도 않고 그렇게 밤하늘의 별빛을 받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별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길은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무엇도 아닌 그의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꿈을 꾸는 자’는 그 길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잠시 머물던 비의 영혼은 인사를 하며 사라져가고,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파랗게 가득 채울 하늘이 그곳에 머물렀다. 카페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는 쉴 틈 없이 바빴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문득 그녀가 머물던 창가에 멈추었다.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그 공간 속에서 한없이 울려 퍼졌다.

매앰매앰.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길을 제대로 찾았을까, 어둠 속에 숨겨진 그 별빛을 발견했을까. 꿈을 꾸는 그 마음으로 아마 다시 그 길을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이렇게, 매미의 울음소리를, 포근한 늦여름 햇살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비의 계절은 끝나고,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매미들의 울음소리만 사람들의 귓가에, 마음속에서 울려 퍼진다.






이건 재작년 (2005)에 써서 진주시 종합 학예회 대상 받은거 (....)
지금 보니 너무 부끄럽다 ㅠㅠ 어떻게 이렇게 써서 대상을 받은 거지 ;
물론 백일장인지라 똑같이 못쓰고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백일장은 2학년들이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중 2/3이 1학년이다.
3학년은 뭐랄까, '어른들처럼 쓰려고 한다' 라는 것 때문에 잘 안뽑아 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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