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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나 조선 등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는 그냥 한국(Corea)으로 번역했습니다.
처음 부분의 남북국/고려/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부분은 번역문에선 그냥 '몇 세기를 거치며' 정도로 썼고요.
일본 역시 '왜' 등의 이름을 쓰지 않고 그냥 다 일본, Japón으로 썼어요.
*작성자 : 리타(MargaRita) ―원문
많이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 스페인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의 번역입니다.
한국어
독도는 한국의 울릉도에 부속된 화산섬으로, 동도, 서도와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 호가 이 섬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서양인들에겐 리앙쿠르 암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독도는 바위가 아닌 섬이고, 그들이 주인 없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원래 대한민국의 영토였던 것을 모르고 '본' 것이기 때문에 리앙쿠르 암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이 섬은 울릉도에서는 48해리, 일본의 은기도에서는 82해리나 떨어져 있어 위치상으로 한국에 더 가깝다.
오래 전 울릉도와 독도에는 우산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는 서기 512년 신라에 귀속되었고 남북국 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계속 한국에 귀속되어 있었다. 일본이 이 섬을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은 1905년의 일이다.
16세기 말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고 울릉도 등의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이에 조선은 주민보호를 위해 공도정책을 실시했는데, 일본은 그 틈을 타서 일본인 어부들에게 울릉도에서의 조업을 위한 죽도도해면허와 독도에서의 조업을 위한 송도도해면허를 발급하고 그곳에서 조업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두 면허는 당시 외국에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면허였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울릉도와 독도를 외국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양국 어부들 간에 충돌이 잦았고, 이런 일이 계속되자 한국인 어부 안용복은 1693년 직접 일본에 건너가 관리를 꾸짖고 돌아오기도 했다. 조선 정부 역시 강력하게 항의했고, 안용복은 1696년 다시 한 번 일본에 건너갔다. 마침내 일본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재확인하고 일본인 어부들의 조업을 금지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 송도도해면허를 취소했다.
1779년의 일본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외국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일본 해군성의 조선동해안도를 비롯한 관찬지도에도 독도는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증거로는,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J. B. B. D'Anvile)의 1737년의 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ée)에도 독도(우산도)는 조선 영토로 되어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이주정책을 실시했으며, 1900년 10월에 독도 영유권을 관보에 게재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그 전인 1905년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2년 후에는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바로 그 1905년, 1월 28일에, 그들은 독도가 무주지라며 일본의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지만 관보에 싣지는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광복을 맞았다.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명(SCAPIN) 677호 군령으로 제주도, 울릉도, 독도가 한국에 반환되었고, 6월 22일의 1033호 군령으로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는 일본 어부들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한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미군정으로부터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들을 영토로 인수받았고, 국제연합은 12월 12일 한국의 영토와 주권을 인정했다. 1950년,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Agreement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제 3항에는, 한국에 반환할 영토는 한반도 본토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를 비롯한 모든 섬이라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카이로 선언은 폭력과 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반환하도록 했고, 포츠담 선언의 8항에는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이 이행될 것임과 함께 일본의 영토는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된다고 명기되어 있으며, 일본은 1945년 8월 10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한국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트집을 잡지만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였고, 다른 모든 한국 땅처럼 20세기 초반에 일본에게 침략당했다가 되찾은 영토이므로 한국으로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타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 제도나 러시아령 북방 4개섬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한 바 있다.
스페인어
Dokdo es una isla volcánica que pertenece a la isla Uleungdo de territorio coreano. Esta isla pequeña está formada por la isla del este, la del oeste y 89 escollos. Anteriormente los occidentales como los franceses las llamaban las Rocas de Liancourt porque ellos pensaban que el ballenero francés Liancourt la descubrió en el año 1849. Pero, realmente la isla Dokdo no es una roca que fue descubierta por el barco Liancourt, sino que es una isla coreana que ya existía. Es decir, ellos no la descubrieron sino que solamente la vieron a lo largo de su viaje oriental. Por esta razón no se las puede llamar Rocas de Liancourt.
Entre Corea y Japón, geográficamente, es Corea la que tiene menos distancia con Dokdo. Esta isla está situada a 48 millas náuticas de Uleungdo de Corea, y a 82 millas náuticas de Eungido de Japón.
Antiguamente, en Uleungdo y Dokdo había un imperio pequeño llamado Usan-guk. Este pequeño imperio perteneció a Corea en el año 512 d.C. y sigue perteneciendo a Corea hasta hoy, a pesar del paso de los siglos. En el año 1905 Japón incorporó Dokdo a su territorio, insistiendo en que esta isla no tenía dueño.
A finales del siglo XVI Japón conquistó Corea, murió mucha gente, tanto como de la propia Península como de la isla de Uleungdo. El gobierno coreano ordenó evacuar la isla para cuidar a sus habitantes y tras la guerra el gobierno japonés solicitó permisos para que los pescadores japoneses pudieran pescar en las zonas de Uleungdo y Dokdo, sin embargo estos permisos fueron usados como pasaporte, lo cual significa que los japoneses sabían que Uleungdo y Dokdo no pertenecían a sus territorios.
Por eso había muchos conflictos entre los pescadores coreanos y japoneses. En el año 1693, como no mejoró nada la situación, un pescador coreano llamado An Yongbok fue a Japón y reclamó a los funcionarios japoneses. El gobierno coreano también protestó vehemente y en 1696 An yongbok fue a Japón otra vez. Por fin Japón reafirmó que Dokdo era territorio coreano y prohibió que los pescadores japoneses pescaran en estas zonas.
En el mapa japonés de 1779, Uleungdo y Dokdo aparecen como territorios extranjeros. Además, Dokdo aparece como territorio coreano en los mapas oficiales japoneses con el nombre de 'Costa del Este de Corea' del Ministerio Naval Japonés. Y en 'Royaume de Corée' de 1737, del geógrafo francés J. B. B. D'Anvile, Dokdo(Usan-do) aparece como una isla coreana.
A finales del siglo XIX, el gobierno coreano abolió el programa político que ordenaba evacuar las islas y envió gente para que repoblase la isla. En octubre de 1900, se publicó en el Boletín Oficial, el dominio coreano sobre Dokdo para que otros países lo supieran.
Desde 1910 hasta 1945 Corea fue colonia de Japón. Anteriormente, Japón había incorporado Dokdo a su terrirorio el 28 de enero de 1905 insistiendo en que Dokdo no tenía dueño, pero no lo publicó en el Boletín Oficial. En el mismo año Japón quitó el derecho diplomático de Corea y dos años más tarde destronó a su emperador.
El 15 de agosto de 1945, se acabó la Segunda Guerra Mundial y Corea recuperó la independencia.
El 29 de enero de 1946, Jeju-do, Uleungdo y Dokdo fueron devueltos a Corea por el 677º mandato del Cuartel General Supremo de los Aliados(SCAPIN), y por el 1033º mandato del 22 de junio se prohibió a los pescadores japoneses acercarse a más de 12 millas náuticas de Dokdo.
Después de la Instauración del Gobierno el 15 de agosto de 1948, la Administración Militar de los EEUU definió como territorio Coreano, la Península de Corea y las islas anexadas y la ONU lo confirmó y lo declaró el 12 de diciembre del mismo año. Además, está puesto claramente que los territorios devueltos a Corea eran la Península de Corea y todas las islas como Geomun-do, Jeju-do, Uleungdo y Dokdo en la cláusula tercera del Acuerdo de los Antiguos Territorios Japoneses (Agreement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de los Aliados.
La Declaración de Cairo hizo que todos los territorios adquiridos por medio de la violencia y de la coacción fueran devueltos, en la cláusula octava de la Conferencia de Potsdam, está escrito claramente que todos los artículos de la Declaración de Cairo serían cumplidos y que el territorio de Japón estaría limitado en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y las islas pequeñas que decidiesen los Aliados. El 10 de agosto de 1945, Japón aceptó la Conferencia de Potsdam.
Los japoneses se quejan de que Corea no quiere remitir este problema a la Corte Internacional de Justicia, pero Corea no tiene porque hacerlo, ya que Dokdo pertenece al país desde el año 512 d.C. y es una isla que fue quitada por los japoneses al principio del siglo XX y posteriormente fue devuelta a Corea, como otros territorios coreanos.
Japón ha rechazado remitir los problemas territoriales sobre las Islas Senkaku y otras islas del norte, sobre las que otros países insisten en su dominio.
처음 부분의 남북국/고려/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부분은 번역문에선 그냥 '몇 세기를 거치며' 정도로 썼고요.
일본 역시 '왜' 등의 이름을 쓰지 않고 그냥 다 일본, Japón으로 썼어요.
*작성자 : 리타(MargaRita) ―원문
많이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 스페인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의 번역입니다.
한국어
독도는 한국의 울릉도에 부속된 화산섬으로, 동도, 서도와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 호가 이 섬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서양인들에겐 리앙쿠르 암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독도는 바위가 아닌 섬이고, 그들이 주인 없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원래 대한민국의 영토였던 것을 모르고 '본' 것이기 때문에 리앙쿠르 암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이 섬은 울릉도에서는 48해리, 일본의 은기도에서는 82해리나 떨어져 있어 위치상으로 한국에 더 가깝다.
오래 전 울릉도와 독도에는 우산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는 서기 512년 신라에 귀속되었고 남북국 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계속 한국에 귀속되어 있었다. 일본이 이 섬을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은 1905년의 일이다.
16세기 말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고 울릉도 등의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이에 조선은 주민보호를 위해 공도정책을 실시했는데, 일본은 그 틈을 타서 일본인 어부들에게 울릉도에서의 조업을 위한 죽도도해면허와 독도에서의 조업을 위한 송도도해면허를 발급하고 그곳에서 조업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두 면허는 당시 외국에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면허였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울릉도와 독도를 외국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양국 어부들 간에 충돌이 잦았고, 이런 일이 계속되자 한국인 어부 안용복은 1693년 직접 일본에 건너가 관리를 꾸짖고 돌아오기도 했다. 조선 정부 역시 강력하게 항의했고, 안용복은 1696년 다시 한 번 일본에 건너갔다. 마침내 일본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재확인하고 일본인 어부들의 조업을 금지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 송도도해면허를 취소했다.
1779년의 일본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외국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일본 해군성의 조선동해안도를 비롯한 관찬지도에도 독도는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증거로는,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J. B. B. D'Anvile)의 1737년의 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ée)에도 독도(우산도)는 조선 영토로 되어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이주정책을 실시했으며, 1900년 10월에 독도 영유권을 관보에 게재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그 전인 1905년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2년 후에는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바로 그 1905년, 1월 28일에, 그들은 독도가 무주지라며 일본의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지만 관보에 싣지는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광복을 맞았다.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명(SCAPIN) 677호 군령으로 제주도, 울릉도, 독도가 한국에 반환되었고, 6월 22일의 1033호 군령으로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는 일본 어부들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한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미군정으로부터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들을 영토로 인수받았고, 국제연합은 12월 12일 한국의 영토와 주권을 인정했다. 1950년,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Agreement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제 3항에는, 한국에 반환할 영토는 한반도 본토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를 비롯한 모든 섬이라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카이로 선언은 폭력과 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반환하도록 했고, 포츠담 선언의 8항에는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이 이행될 것임과 함께 일본의 영토는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된다고 명기되어 있으며, 일본은 1945년 8월 10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한국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트집을 잡지만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였고, 다른 모든 한국 땅처럼 20세기 초반에 일본에게 침략당했다가 되찾은 영토이므로 한국으로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타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 제도나 러시아령 북방 4개섬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한 바 있다.
스페인어
Dokdo es una isla volcánica que pertenece a la isla Uleungdo de territorio coreano. Esta isla pequeña está formada por la isla del este, la del oeste y 89 escollos. Anteriormente los occidentales como los franceses las llamaban las Rocas de Liancourt porque ellos pensaban que el ballenero francés Liancourt la descubrió en el año 1849. Pero, realmente la isla Dokdo no es una roca que fue descubierta por el barco Liancourt, sino que es una isla coreana que ya existía. Es decir, ellos no la descubrieron sino que solamente la vieron a lo largo de su viaje oriental. Por esta razón no se las puede llamar Rocas de Liancourt.
Entre Corea y Japón, geográficamente, es Corea la que tiene menos distancia con Dokdo. Esta isla está situada a 48 millas náuticas de Uleungdo de Corea, y a 82 millas náuticas de Eungido de Japón.
Antiguamente, en Uleungdo y Dokdo había un imperio pequeño llamado Usan-guk. Este pequeño imperio perteneció a Corea en el año 512 d.C. y sigue perteneciendo a Corea hasta hoy, a pesar del paso de los siglos. En el año 1905 Japón incorporó Dokdo a su territorio, insistiendo en que esta isla no tenía dueño.
A finales del siglo XVI Japón conquistó Corea, murió mucha gente, tanto como de la propia Península como de la isla de Uleungdo. El gobierno coreano ordenó evacuar la isla para cuidar a sus habitantes y tras la guerra el gobierno japonés solicitó permisos para que los pescadores japoneses pudieran pescar en las zonas de Uleungdo y Dokdo, sin embargo estos permisos fueron usados como pasaporte, lo cual significa que los japoneses sabían que Uleungdo y Dokdo no pertenecían a sus territorios.
Por eso había muchos conflictos entre los pescadores coreanos y japoneses. En el año 1693, como no mejoró nada la situación, un pescador coreano llamado An Yongbok fue a Japón y reclamó a los funcionarios japoneses. El gobierno coreano también protestó vehemente y en 1696 An yongbok fue a Japón otra vez. Por fin Japón reafirmó que Dokdo era territorio coreano y prohibió que los pescadores japoneses pescaran en estas zonas.
En el mapa japonés de 1779, Uleungdo y Dokdo aparecen como territorios extranjeros. Además, Dokdo aparece como territorio coreano en los mapas oficiales japoneses con el nombre de 'Costa del Este de Corea' del Ministerio Naval Japonés. Y en 'Royaume de Corée' de 1737, del geógrafo francés J. B. B. D'Anvile, Dokdo(Usan-do) aparece como una isla coreana.
A finales del siglo XIX, el gobierno coreano abolió el programa político que ordenaba evacuar las islas y envió gente para que repoblase la isla. En octubre de 1900, se publicó en el Boletín Oficial, el dominio coreano sobre Dokdo para que otros países lo supieran.
Desde 1910 hasta 1945 Corea fue colonia de Japón. Anteriormente, Japón había incorporado Dokdo a su terrirorio el 28 de enero de 1905 insistiendo en que Dokdo no tenía dueño, pero no lo publicó en el Boletín Oficial. En el mismo año Japón quitó el derecho diplomático de Corea y dos años más tarde destronó a su emperador.
El 15 de agosto de 1945, se acabó la Segunda Guerra Mundial y Corea recuperó la independencia.
El 29 de enero de 1946, Jeju-do, Uleungdo y Dokdo fueron devueltos a Corea por el 677º mandato del Cuartel General Supremo de los Aliados(SCAPIN), y por el 1033º mandato del 22 de junio se prohibió a los pescadores japoneses acercarse a más de 12 millas náuticas de Dokdo.
Después de la Instauración del Gobierno el 15 de agosto de 1948, la Administración Militar de los EEUU definió como territorio Coreano, la Península de Corea y las islas anexadas y la ONU lo confirmó y lo declaró el 12 de diciembre del mismo año. Además, está puesto claramente que los territorios devueltos a Corea eran la Península de Corea y todas las islas como Geomun-do, Jeju-do, Uleungdo y Dokdo en la cláusula tercera del Acuerdo de los Antiguos Territorios Japoneses (Agreement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de los Aliados.
La Declaración de Cairo hizo que todos los territorios adquiridos por medio de la violencia y de la coacción fueran devueltos, en la cláusula octava de la Conferencia de Potsdam, está escrito claramente que todos los artículos de la Declaración de Cairo serían cumplidos y que el territorio de Japón estaría limitado en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y las islas pequeñas que decidiesen los Aliados. El 10 de agosto de 1945, Japón aceptó la Conferencia de Potsdam.
Los japoneses se quejan de que Corea no quiere remitir este problema a la Corte Internacional de Justicia, pero Corea no tiene porque hacerlo, ya que Dokdo pertenece al país desde el año 512 d.C. y es una isla que fue quitada por los japoneses al principio del siglo XX y posteriormente fue devuelta a Corea, como otros territorios coreanos.
Japón ha rechazado remitir los problemas territoriales sobre las Islas Senkaku y otras islas del norte, sobre las que otros países insisten en su domi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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