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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7.12.29.

은유니 2017. 12. 29. 18:28



0.

야호! 드디어 아이패드로 티스토리 블로그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눈길만 돌리면 됐던 것을.


1.

거리에는 곳곳마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이다. 아니 실은 모두가 허겁지겁 서둘러 시간을 앞서가려는 듯 지난달부터 여기저기에 트리 장식이 매달리기 시작했고, 카페에서는 조금 이른듯 싶은 캐롤이 울리기 시작했으니 이제야 연말을 실감하는 것은 오히려 다소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늘은 누군가에게 마지막 출근일일테고, 특별한 일 없는 내게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평일이 되는 셈이다. 주말 이틀을 보내고 나면 2018년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한동안 적응기를 겪어야 될테지. 그 뒤엔 나의 바깥과 안쪽 모두에서 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올거라 상상하면 부쩍 연말이 차가운 피부에 와닿는 듯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교지 친구들과 만나 각자의 나이를 잊은 듯 새벽 첫차가 다니는 시간까지 쉼없이 수다를 떨었다. 서로가 없는 시간 동안의 변화들을 공유하고 나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연말정산으로 이어졌다. 지난 한해동안 내가 가장 기뻤던 일, 혹은 슬프고 힘들었던 일, 그 사이 내가 가장 잘한 일, 또는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한 이야기들이 연말연시의 달뜨고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타고 둥둥 떠다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내게 올한해 가장 기쁜 일도 혹은 힘들었던 일도 모두 직장을 그만둔 일이었다. 나는 퇴사를 함으로써 비로소 그동안 내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할 수 있었다. 늦은 밤 내일이 걱정되고 두려워 잠들지 못하고, 매일 아침 꽉막힌 심장을 부여잡고 그냥 모든 일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저녁무렵엔 항상 지쳐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하루하루. 나 말고는 도무지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잠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하루 한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밖으로 한발짝 내딛을 기운조차 내지 못했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내게 가시였음을, 타인의 도움을 통해 빼낼 수 있는 가시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모두 그때의 선택 때문이었다.


힘겨움을 견디지 못해 나는 퇴사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너무 아프고 힘들 땐 꼭 모든 일들을 직시하지 않고 내려놓아도 된다는 점을 알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퇴사 후 아무 걱정 없이 즐거이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아질 수 있음을, 다시 웃고 떠들며 '아 행복하다' 생각하는 순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한번 가본 길을 뒤돌아서 나온다 해서 그길로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은 잘 다독여 넣어두고 새로운 시작을 해도 상관없다. 이제는 좀 더 내 마음을 챙기고, 내가 불행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보자, 하고. 그리고 이제 내년부터는 또 새 직장에서 출근하게 될테니까. 메데타시 메데타시.


올해의 가장 잘한 일은 역시 망설임 끝에 상담을 받으러 간 일! 앞으로도 마음 힘든 날이 찾아오면 너무 망설이지 말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2.

나는 내가 괜찮아졌을 때의 느낌, 웃었을 때의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담을 받으러가기 전에 비해 상담받은 뒤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퇴사하기 전에 비해 지금의 나는 무너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래도 이따금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정이 몰려올 때면 질식해버릴 것만 같고, 출구가 없는 미로에 빠진 것만 같을 때도 있다. 괜찮아진 줄 알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감은 때때로 나를 숨막히게 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이제는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지금의 감정이 지나갈 수 있다는 걸 믿어. 그래도 참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을 땐 견고히 쌓아올린 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우울감은 완치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완전히 괜찮아진다는 건, 모두 잊고 이겨내고 튼튼하고 강한 내가 된다는 건 아마 영원히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몸'과 같이 '건강한 마음'이라는 건 실재하지 않는 허상과 마찬가지라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자신이 괜찮아져야 한다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가야 한다고 이룰 수 없는 이상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라질 수 없는, 사라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면, 싸우고 이겨내려 들기보다는 조심히 안고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지금은 괜찮아도 부쩍부쩍 솟아오르는 우울감이 또다시 나를 좀먹어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괜찮아, 멀쩡하고 건강해, 자기암시를 걸기보다는 전에도 겪었던 그 감정이 다시 찾아오는구나, 하지만 이전의 나는 이걸 견디어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는 거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최대한 온전히 간직해서,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패트로누스를 만드는 거다. 이건 어쩌면 심리적 알레르기같은 거라서- 내가 자신의 심리적 체질을 이해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최대한 피해가고, 그것을 어쩔 수없이 맞닥들이더라도 지난 치료법을 잊지 않고 떠올릴 수 있도록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일, 혹은 병원을 찾아가는 일, 나를 맡길 수 있는 그대에게 연락하는 일 같은.


나를 돌보는 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혼자 운동을 할 수 없을 땐 트레이너를 찾아가듯이, 혼자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땐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배운 것들을 혼자 지내는 동안에도 반복하며 잊지 않도록 몸에, 마음에 새겨야지. 내 안의 나를 믿자. 때로 믿지 못할 때는 나를 믿어주는 그대가 있음을 떠올리자.


3.

악몽같았던 지난 밤이 잦아들고, 내년 한해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늘 여기 내가 있다 그러니 괜찮다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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