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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ing

영원

은유니 2008. 9. 9. 00:51

   *영원




사그라지는 공기의 촉감이 서늘해져 갈 무렵, 시간은 빛을 잃었다. 태양의 손에 닿아 붉게 물들던 사물들은 점차 그림자에 의해 잠식되어 가고, 스산하게 우는 바람만이 그 공허한 공간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이나 빗줄기가 빗겨간 대지는 메마르고 건조해져 있었다. 어미 잃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목마름을 가시게 해줄 물을 찾는 듯 몇 없는 땅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뿌리 깊은 곳에서도 수분 부족에 허덕이는 풀과 나무들의 갈라지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저물어가는 날 빛 속에 길고양이는 애절하게 울어댔지만, 무심하게 세상에 빗겨 서 있는 그 말고는 누구하나 지켜보는 이도 없었다. 회색의 짙은- 흐릿한 건물들 사이를 말없이 돌아보던 해마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마치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끈질기게 먼지 날리는 땅을 긁어대던 길고양이는 존재감 없이 서 있는 그의 바지가락에 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고목같이 우뚝 서있을 뿐- 기대어 있을 뿐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이내 지친 길고양이는 회색 긴 그림자의 자취를 늘어뜨리며 생명의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느릿하게 잠겼다 스르르 올라가는 그의 눈꺼풀이 없었다면 그 어느 누구도 그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느리게 전환되는 사진 영사기 속을 바라보는 마냥, 가상현실 속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마냥 아무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무언가 생명이랄 감각을 잃어버린 듯 불안하고 쓰러져 버릴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목적이 무엇이었느냐도 잊어버린 채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나지막한 울림 속 흐르듯이 시간이 잃은 그것을 좇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와, 그리고 회색 건물과, 길고양이가 남기고 간 자취로만 가득 찬 이 공간이 세상 속에 잠들어갈 무렵, 아마 다른 공간에서는 길가를, 누군가의 머리맡을, 귓가에 속삭이고, 끝없이 울려 퍼지는 웃음, 웃음, 웃음소리를 향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 그것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손으로 과거를 짓이기고 미래를 건설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앗아가고, 어딘가의 빗소리를 앗아가고, 시간의 작은 말소리를 앗아가고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빛-. 그것으로 가득한 밤빛을.

그러나 이곳엔 오직 우주 공간 속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 칠흑과 회색으로 칠해진 풍경일 뿐이었다. 원이 이루어낸 피어나는 문명 속 죽어가는 마음일 뿐이었다. 목을 축일 물을 허덕이던 길고양이는 쳇바퀴마냥 굴러가는 것밖엔 습득하지 못한 인간들의 이기를 벗어나 달릴 수 있을지. 아마 그것은 예전의 녹 빛 아래였다면 숨쉬고 뒹구는 것과 같은 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것을 익히지 못한 그들 속에선 과거란 한 권의 책 속의 몇 페이지 몇 째 줄 글자들의 나열에 불과한 것. 한껏 도태된 파괴자들의 후손들이 남긴 비웃음에 불과한 것. 서늘하게 식은 맛없는 커피를 홀짝이며 휘갈기듯 적어 내려갔을 ‘역사’란 이름의 단편.



순간 회색의 역사로 도배된 건물들 사이로 끼릭끼릭, 하는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목적 잊은, 주인 잃은 인형들이 제 역할을 찾으려는 듯 밤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한때 추억을 공유했던 낡은 기계들은 주인을 향한 충성심 가득한 광대의 웃음을 짓고 있으나 더 이상 인형으로써의 가치를 잃은 그 웃음에는 아무런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세상 속의 이단아와도 같이, 그저 웃고 웃으며 무언가를 절실히 찾았다. 광기 가득한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그 것을 알아차려 주는 누군가를, 그들의 탄생의 유일한 목적을 다시 실행시켜 줄 누군가를, 이전의 길고양이만큼이나 애절히 찾아 헤맸다. 그러나 건조한 흙이 먼지바람이 되어 흩날릴 뿐, 아무런 생각이 읽히지 않는 그의 얼굴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의 부조리 속 색채 없는, 소리 없는 외침 같은 풍경이었다.


그 속에 언 듯,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 분명치는 않았다.

그러나 마치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 빛바랜 인형들이 마찰음을 내는 것을 멈추었다. 그 중에 어느 눈의 빛을 아직 간직한 인형 하나가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반짝임도 보이지 않던 그 칠흑 속에서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은 듯 아스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감았다. 그 때 그 눈빛을 닮은 반짝임이 하늘 위에 언 듯 비추었다. 이내 사라졌나 하고 생각했더니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나타나 그 빛을, 아무것도 비출 것 없는 잠든 공간을 내려다보았다.

그 별과 눈이라도 맞추려는 듯 인형들이 하나, 둘 전부 고개를 들었다. 그저 처음의 그 인형만이 두 눈을 감은 채 그곳에 우뚝 서서- 세상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바퀴 속에서 그 바큇살에 끼여 있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고 평온했을까. 아니면 사그라지는 공기의 내음마냥 메말랐을까.



그가 그 인형을- 이번에는 좀 더 분명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본디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시간이 잃어버린 그것을 찾으러 떠났을까, 아니면 그 낡은 기계와 함께 잠든 것일까. 남겨진 그들은 어떠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가만히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걸 쓰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책 한장 분량의 짧은 글..
평소엔 쓰지 않던 어두운 어휘들이 우수수..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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